[기자수첩] ‘집값 안정’과 ‘내 집 사다리’ 사이에서
김학영 기자
news@dokyungch.com | 2025-10-21 09:52:49
[도시경제채널 = 도시경제채널]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솟는다.
10월 15일 발표된 대책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과 수도권 규제지역의 대출 한도를 축소한 이번 조치는 ‘집값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서민과 청년의 ‘내 집 마련 사다리’를 흔들었다는 비판과, 과열된 시장을 식히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가 맞부딪치며 정치권과 시장 모두를 흔들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연일 격론이 이어졌다. 야당은 “중산층의 주거 이동 사다리를 걷어찼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고, 여당은 “대출 완화만이 답은 아니다”라며 맞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비상 상황이기에 조치를 취했다”며 “집값 안정이 곧 사다리”라고 맞받았다.
그의 발언은 시장에 던지는 신호다. 정부는 ‘대출 확대’보다 ‘가격 안정’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실수요자 입장에선 이 신호가 곧 ‘기회의 축소’로 읽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피해 계층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우회적으로 정부의 접근에 제동을 걸었다. 금융 안정과 주거 복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언제나 어렵지만, 그 균형추가 서민 쪽으로 향하지 않을 때 시장의 신뢰는 흔들린다.
정책의 그림자는 이미 시장에 드리웠다. 강남과 한강 벨트의 고가 주택 보유자들은 보유세 강화 발언에 술렁이고,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둔 다주택자들은 매도와 증여 사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증여 건수가 급증하고 매물은 잠시 줄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정적일 뿐, 세제 부담이 본격화되면 매물 증가는 불가피하다.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 ‘안정’을 주려다 오히려 ‘긴장’을 불러온 셈이다.
이제 시장의 눈은 다음 달 발표될 공시가격에 쏠려 있다. 공시가격 인상은 곧 세금 인상으로 직결된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할수록, 실수요자와 보유층 모두가 느끼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억원 위원장이 가상자산 법안과 금산분리 완화 등 금융정책 전반의 실용화를 언급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부동산 대책이 더 이상 ‘건설 경기’나 ‘투기 억제’에만 머물지 않고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 관리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정책도 ‘정치의 언어’로만 소비된다면, 시장은 방향을 잃는다.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와 내 집 마련의 꿈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다. 문제는 속도와 순서다.
정부가 ‘가격 안정’을 말할 때 국민은 ‘기회 상실’을 듣고, 정부가 ‘대출 억제’를 강조할 때 시장은 ‘사다리 붕괴’를 떠올린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제가 아니라 더 정교한 설계다. 단기적 불안보다 장기적 신뢰를 우선하는 정책의 리듬이 회복돼야 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이 정책은 내 편이다”라고 느끼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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