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거처 잃고, 재개발 갈등 내제…강남 구룡마을의 ‘잿빛 설’
유주영 기자
news@dokyungch.com | 2026-02-15 09:31:07
[도시경제채널 = 유주영 기자]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 14일 '강남 마지막 판자촌' 개포동 구룡마을. 6지구에서 25년간 살았다는 70대 김모씨가 "뼈대만 남고 살림살이는 귀신같이 다 태워버렸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난달 16일 화마가 구룡마을 4·6지구 판잣집들을 덮친 지 한 달. 마을 곳곳에는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났고, 불에 탄 나무나 플라스틱 등 정리되지 못한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선릉·개포 등 강남구 일대 호텔이 이재민 181명을 위한 임시거처로 마련됐지만, 주민들은 오랜 보금자리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화재 이후 한 달을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주민들은 "집이 잿더미가 됐으니 처참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이상 거주해온 이들은 "다들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여기는 삶의 터전 그 자체"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나마 살림살이가 남은 주민들은 다른 이재민들에게 점심으로 떡국을 나눠주느라 분주했다.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다는 60대 김모씨는 "화재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매일 급식 봉사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식사를 준비하던 한 주민은 "다들 힘내라고 (떡국을) 해주는 거지. 집이 다 불탔는데 얼마나 힘들겠냐"며 거들었다. 곁에서 듣던 이웃은 "눈물 나게 고맙다"고 했다.
한 식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나누며 잠시 웃음을 되찾은 주민들은 전을 부치며 이튿날 함께 지낼 차례상 준비에 나섰다. 구룡마을 비상화재대책회의 안세환(55)씨는 "그래도 명절인데 마을 주민들끼리 모여서 서로 위로해야 한다"며 "주민들이 화합하자는 취지로 모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임시거처가 있음에도 일부 주민은 구룡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텐트로 나와 점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싸우려고 나온다"며 결의를 다지는 주민들 모습이 목격됐다.
강남구청은 오는 23일까지 호텔 등 임시거처를 지원하고 이후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공사) 임대주택으로 이재민들을 이주시킬 계획이다. SH공사는 보증금 전액을 면제하고 임대료를 60% 감면해준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당장의 월세 부담과 재개발로 평생 살아온 곳을 잃을 것이란 두려움에 이주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별 분양권 부여나 임대료 전면 지원 요구도 나오지만, SH공사는 무허가 건축물 거주자에게 분양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곳은 현재 3천739세대 주거단지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며 23일 이후의 주민들 거취는 '시계 제로' 상태다. 임시 거처 지원이 다시 연장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화재 폐허 위의 노숙 농성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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