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경제채널 = 최강호 기자] 1990년대 초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해 건설된 1기 신도시가 조성 30년 만에 대규모 재편의 기로에 섰다. 정부가 2030년 신규 아파트 입주를 공식 목표로 내걸며 재건축 로드맵을 가동했지만, 실제 현장은 신도시마다 판이하다. 분당은 대형 건설사들이 이미 수주 물밑 경쟁에 돌입한 반면, 일산은 가장 기본적인 행정 단계조차 완료하지 못했다. 착공 시점보다 이주 주택 확보 여부, 용적률 수준, 수억 원에 달하는 분담금이 재건축의 성패를 가르는 진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13개 구역에 쏟아진 15만 3,000가구의 열망
국토부는 지난해 11월 1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선도지구 13개 구역을 지정했다. 분당 목련마을 빌라단지(1,107가구)와 일산 정발마을 연립(262가구) 2개 구역은 선도지구에 준하는 수준으로 별도 지원·관리하기로 했다."
경쟁은 치열했다. 제안서를 제출한 구역의 총 규모는 15.3만호로, 선정 총 규모인 2.6만호 대비 5.9배에 달했다. 선도지구로 선정된 단지는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본격적인 재건축 일정에 돌입하게 됐다. 그러나 2024년 11월 선도지구 지정 당시 정부가 제시한 '2025년 말 특별정비구역 지정,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 목표 대비 현재까지는 3분의 2가량만 계획대로 진행되는 셈이다.
분당 4곳 전부 특별정비구역 지정 완료
사업 추진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성남 분당이다. 성남시는 2025년 11월 14일과 17일 특별정비구역 지정 제안서를 접수한 뒤 관계기관 협의와 검토를 집중 추진해, 2025년 12월 15일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2026년 1월 19일 최종 지정·고시를 완료했다. 통상 1년 이상 소요되는 절차를 약 2개월로 단축함으로써 주민들의 재건축 열망에 신속 행정으로 화답했다는 평가다.
분당 선도지구 아파트 3개 구역(시범단지 현대우성·샛별마을·양지마을)과 선도지구 준하여 별도 지정된 목련마을 빌라단지는 지난달 모두 특별정비구역 지정을 마쳤다. 이 중 양지마을은 사업 규모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양지마을 재건축 사업은 분당구 수내동 일대에 최고 37층, 6,839가구 규모의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대규모 정비사업이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 가운데 최대 규모 정비사업장으로 꼽힌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중 최초로 재건축 사무소를 개소했으며, 개소식에는 삼성물산 강남사업소, 현대건설 도시미래가치사업실, GS건설 도시정비팀 강남지사 등 1군 건설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추진 속도가 빠르고 사업 규모가 큰 양지마을을 일찌감치 선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성남시 관계자는 "선도지구 지정이 재건축을 우선 검토할 지역을 정한 단계였다면, 특별정비구역 지정은 실제 재건축 절차를 시작해도 된다는 의미"라며 "이제부터는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후속 행정 절차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산·중동, 첫 관문도 못 넘었다
반면 고양 일산의 상황은 정반대다. 고양 일산의 선도지구 4곳은 모두 정비구역 지정 시점이 내년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백송마을과 후곡마을이 현재 정비계획 자문 절차를 진행 중이며, 강촌마을이 예비사업시행자 지정 절차를 밟고 있고, 빌라 재건축을 추진 중인 정발마을이 주민대표단 구성을 추진 중이라고 고양시 관계자는 밝혔다. 부천 중동의 선도지구들도 아직 정비구역 지정 제안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은하마을이 정비계획 자문을 진행 중이며 반달마을이 예비사업시행자 지정을 추진 중이라고 부천시 관계자는 밝혔다.
집값 흐름도 두 도시의 온도 차를 여실히 드러낸다. 분당 선도지구 단지들은 재건축 기대감이 반영되며 지정 이후 최대 5억원 가량 급등해 '20억 클럽'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반면 일산은 실거래 가격이 분당의 상승분에도 못 미치는 5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사업성 우려로 매수세가 붙지 않아 가격 흐름이 정체된 상태다. 일산 지역 공인중개사는 "선도지구 지정에 대한 기대가 예상보다 크지 않아 매수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 분위기"라며 "사업성이 나오지 않으면 집값이 더 떨어질까 우려하는 주민들도 적잖다"고 전했다.
용적률이 갈라놓은 사업성
추진 속도 격차의 근본 원인은 결국 기준 용적률이라는 경제 논리에서 비롯된다. 기준 용적률이 높을수록 재건축 후 일반분양 물량이 커지고, 그 수익이 사업비를 충당하면서 조합원 분담금을 낮추는 구조다.
1기 신도시 재건축 기준 용적률(아파트 기준)은 일산 300%, 분당 326%, 산본·평촌 각각 330%, 중동 350%로 설정됐다. 일산신도시의 아파트 현황 용적률은 172%로 분당(184%), 평촌(204%), 산본(207%), 중동(216%)에 비해 가장 낮다. 기준선 자체가 낮은 만큼, 재건축으로 300%까지 올려도 증가폭이 타 신도시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일부 선도지구는 기준 용적률 추가 상향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산 신도시 일각에서 기준용적률 상향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고양시는 현재로서는 입장 변화가 없다.
재건축 속도에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원인은 사업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합의되지 않는 주민 동의, 적정한 용적률 기준, 늘어나는 분담금 등 재건축 관련 고질적인 갈등 역시 사업성이라는 문제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위원은 "재건축 사업의 인허가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개별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냐가 사업 추진의 핵심"이라며 "사업 추진 속도가 부촌 중심으로 두드러질 여지가 크고, 그렇다면 지역별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빠른 분당이 안고 있는 모순: 이주 공백
아이러니하게도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른 분당이 가장 심각한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분당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지자체는 이주 수요 흡수 여력이 충분한 상황으로 판단됐다. 이주 여력이 부족한 분당에 대해서는 관리처분 인가 물량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주 대책을 보완할 계획이다. 성남시는 이를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주 문제는 이미 한 차례 좌초된 전례가 있다. 국토부는 야탑동 보건소 예정 부지에 1,500가구 규모 이주 지원 공동주택 건립 계획을 세웠으나 인근 주민 반발로 인해 성남시도 취소를 요청하면서 계획이 철회됐다. 당시 반발에 무릎을 꿇은 이 결정이 이후 분당 전체의 재건축 물량 상한을 옥죄는 구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성남시는 대체 부지로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지만 국토부가 수용하지 않으면서 뚜렷한 이주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양지마을 내부 갈등도 변수다. 양지마을 재건축은 금호 1·3단지, 청구 2단지, 한양 1·2단지 등 5개 단지를 통합해 최고 37층, 6,839가구 규모로 조성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1기 신도시 정비사업 가운데 최대 규모로 꼽힌다. 그러나 주민대표단은 2024년 7월 한국토지신탁과 업무협약을 맺었다가 협약 해지를 통보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주민 내부의 이해관계 충돌이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이주 공백이 전세 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
이주 대책의 구멍은 재건축 일정의 문제를 넘어 수도권 전세 시장 전반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 현재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7년부터 매년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으로 2만~3만 가구의 이주 수요가 발생한다. 전셋값 등을 자극하지 않도록 정밀한 이주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러나 공급이 줄어드는 시장에 수만 가구의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 전·월세 가격이 급격히 오를 가능성이 크다.
분담금 부담 역시 사업 추진을 옥죄는 또 다른 요인이다. 분당 양지마을이 통합 재건축 추정 분담금을 공개했는데, 선도지구 중 최초 사례다. 용적률 적용 범위 및 소유 평형 등에 따라 분담금 차이가 있으며, 2억원 이상 환급받거나 최대 7억원 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선도지구 경쟁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임대주택 비율을 높게 제시한 단지일수록 일반분양 수익이 줄고, 그 차액을 조합원이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30년 넘게 같은 곳에서 거주해온 고령 조합원이 많은 단지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분담금은 재건축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
패스트트랙 확대와 12조원 펀드, 처방전의 한계
정부도 속도 지연을 줄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내놨다. 1기 신도시 내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모든 단지가 '특별정비계획 수립 패스트트랙' 제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30개월가량 소요되던 정비계획 수립 기간이 반년 수준으로 줄어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국토부는 12조원 규모의 미래도시펀드를 조성해 2026년부터 정비사업 초기 사업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특별법 개정으로 기본계획과 특별정비계획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도록 했고, 유사 목적의 동의 절차는 한 번으로 줄였다.
그러나 제도 바깥의 변수들이 낙관론에 제동을 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법은 여야 이견으로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일산은 통합 재건축, 구역별 재건축, 리모델링, 소규모 정비 등 선택지가 많다는 점이 장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향 설정이 늦어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단지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어떤 모델이 가장 현실적인지에 대한 합의가 지연되면서 행정 절차 착수 자체가 늦어지는 구조다.
전문가 진단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속도를 내면서 이주 수요가 몰리면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덩달아 매매가도 불안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서울 도심 몇백 가구 단지 재건축조차 과정이 만만찮은데, 수만 가구 신도시 재건축을 손쉽게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며 "지역별 이주 수요까지 고려한 구체적이고 꼼꼼한 후속 대책을 내놓고, 지자체·주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걸림돌을 제거해야 성공 모델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선도지구 중심의 상징적인 성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후발 지역의 행정 절차를 함께 끌어올리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본구상 수립, 교통·기반시설 용역, 정비계획 초안 마련 등을 공공이 선제적으로 지원해 초기 준비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
2030년 입주, 약속이 될 것인가
1기 신도시 재건축은 낡은 아파트를 교체하는 단순 공사가 아니다. 수도권 주거 지형을 다시 그리고, 30년 된 도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러나 1기 신도시 재건축은 낡은 아파트를 새로 짓는 사업을 넘어 수도권 1세대 계획도시의 미래를 보여주는 작업인 만큼, 분당·평촌만 앞서가고 일산·중동은 제자리를 맴도는 양극화 구조가 굳어진다면 애초에 표방한 '균형 재건축'도, '2030년 입주'도 공허한 구호로 끝날 수 있다.
이주 주택 확보, 지역 간 용적률 형평성 재검토, 분담금 연착륙을 위한 금융 지원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다면 일정표는 숫자에 불과하다. 정부·지자체·주민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넘어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가 1기 신도시 재건축의 진짜 시험대다.
[저작권자ⓒ 도시경제채널.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