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여름, 우리나라는 사상 최악의 폭염과 집중호우라는 이중고를 겪었다. 기록적인 폭우가 전국을 강타한 데 이어, 연일 계속된 폭염은 우리의 일상과 도시 기능을 크게 흔들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도시가 공통으로 직면한 위기다. 도시는 다양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자연재해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도시는 단순한 공간 계획을 넘어 생존을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기후변화 위협 중에서도 도시는 특히 폭염과 폭우에 취약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는 열을 쉽게 흡수하고 저장해, 도심의 온도를 주변보다 높이는 열섬현상을 유발한다. 이는 시민 건강을 위협하고 에너지 수요를 가중시킨다. 또한,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 구조는 집중호우 시 침수 피해를 키우는 요인이 된다. 도시의 물리적 특성이 기후위기 시대에 새로운 취약 요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도시가 기후변화에 취약해진 것은, 과거 도시계획이 ‘성장’과 ‘확장’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기 도시계획은 교통과 주거, 산업 기능의 효율적 배치를 우선시하며 자연의 순환 기능은 배제했다. 녹지는 줄고 불투수면은 늘어났으며, 빗물은 단지 빨리 내보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지금, 기존의 성장과 확장 중심의 도시계획 전략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 속에서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 도시계획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계획의 우선순위는 기후 회복력과 적응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그렇다면 기후 회복력이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시 회복력’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시 회복력은 단순히 위기를 버티는 수준을 넘어,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은 도시 빗물 관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과거의 빗물 관리 목표는 신속한 배제였다. 지표면에 떨어진 빗물을 가능한 한 빠르게 하수관을 통해 하천으로 내보내는 것이 우선이었고, 이로 인해 자연적인 물순환은 심각하게 왜곡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빗물을 저장하고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빗물은 단순히 처리해야 할 골칫거리가 아니라, 도시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소중한 자원이다. 왜곡된 물의 흐름을 바로잡고, 건전한 물순환 체계를 회복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폭염 적응 역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녹지 인프라 구축이 핵심이다. 특히 공간이 부족한 도심에서는 옥상과 벽면을 활용한 입체녹화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끼를 활용한 옥상녹화는 토양 없이도 생육이 가능해 건물 하중을 줄이고, 유지 관리도 용이하다. 벽면녹화 역시 건축물 벽면이나 방음벽 등 다양한 구조물에 적용할 수 있어 도심 전역에 녹색 완충지대를 확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미관 개선을 넘어 도심 온도를 낮추고, 대기질을 개선하며 시민의 정서 안정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도심 녹지 조성과 활용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제는 유휴공간을 생태 자원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강한 도시는 사회적 약자 보호에서 진정한 회복력을 갖춘다고 할 수 있다. 폭염과 한파의 가장 큰 피해자는 고령자와 저소득층이다. 폭염에는 그늘막과 무더위 쉼터가, 한파에는 난방 쉼터와 에너지 효율을 강화한 주택이 필요하다. 이런 대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시설 확충과 더불어, 생활권 설계 차원에서는 ‘15분 도시’ 개념도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병원, 마트, 공원, 커뮤니티 시설 등을 도보 15분 이내에 배치하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위기 상황에서도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이는 이동이 불편한 취약계층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설계이기도 하다. 생활권 내 녹지와 쉼터를 확보하는 것 역시 회복력 있는 도시의 중요한 조건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계획은 단순한 공간 배치를 넘어, 도시 전체의 회복력을 설계하는 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건물 배치 시 바람길을 고려하고, 보행자 동선에는 그늘과 녹지를 결합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이라는 세 주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정부는 기후적응형 도시계획과 제도 마련, 예산 확보로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기업은 녹색기술 개발과 인프라 확충에 투자해야 한다. 시민 역시 옥상녹화, 빗물통 설치, 에너지 절약 같은 일상 속 실천을 통해 도시 회복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도시는 이제 과거의 성장과 효율성 중심의 설계를 벗어나야 한다. 도시 설계의 목표 역시 기후위기에 적응하고 회복할 수 있는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후적응형 도시는 단순한 재난 회피 전략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도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는 이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도시를 다시 그려야 할 때다.
도시경제채널 / 최종수의 도시와 기후톡톡 칼럼니스트 news@dokyung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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