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소비&온실가스 배출 30% 이상 감축
[도시경제채널 = 유주영 기자] 100여년간 이어져온 원유 정제 방식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통째로 바뀐다. 국내 연구진이 원유를 고온으로 끓이지 않고 상온에서 분리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을 개발해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고동연 교수 연구팀이 값싼 고분자 분리막만을 이용해 원유를 정밀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원유를 고온으로 끓이지 않고 상온에서 분리할 수 있는 혁신 분리막 기술. [사진=KAIST]
현재 전 세계 정유산업은 원유를 350도 이상으로 가열한 뒤 끓는점 차이에 따라 성분을 분리하는 증류 공정에 의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는 연간 약 1100TWh에 달하고, 상당한 온실가스 배출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일반적으로 원유를 분자 단위로 분리하기 위해서는 초박막 선택층을 추가로 코팅해야 하지만, 연구진은 코팅이 전혀 없는 다공성 고분자(PAN) 막을 활용했다
실험 결과, 원유 속 무거운 성분들이 분리막 내부 미세공에 자연스럽게 흡착되면서 2나노미터 이하 크기의 정교한 통로가 스스로 형성되는 현상이 발견되고 원유가 분리막과 상호작용하며 맞춤형 분리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같은 자발적 구조 형성을 통해 나프타, 휘발유, 등유 등 가벼운 성분은 빠르게 통과시키고 무거운 성분은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고, 특히 기존에는 성능 저하의 원인으로 여겨졌던 막 오염(파울링) 현상을 오히려 분리 성능 향상에 활용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기술은 기존 최고 수준의 원유 분리막보다 약 23배 빠른 분리 속도를 기록했고, 28일 이상 연속 운전에서도 성능 저하 없이 안정성을 유지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또 기존 정유공장의 배관 시스템에 필터 모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어 대규모 설비 교체가 필요하지 않다.
연구진에 따르면, 분리막 공정을 도입할 경우 에너지 사용량은 31.6%,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6%, 운영비는 36%까지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간 약 1000만톤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승용차 약 400만대가 1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량에 해당된다.
고동연 KA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리막이 혼합물과 만나 스스로 최적의 분리 통로를 빚어낸다는 새로운 과학적 원리를 규명해낸 성과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원유 정제를 넘어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정제, 배터리 용매 회수, 의약품 정제 등 다양한 화학 공정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 대면적 모듈화와 장기 운전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증류 중심의 정유산업이 분리막 기반의 ‘분자 정유’ 체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의 개인기초연구와 선도연구센터(ERC) 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됐고,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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