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경제채널 = 박준범 기자] 주류(主流) 사회는 청년을 향해 끊임없이 이름표를 붙여 왔다. ‘MZ세대’부터 최근의 ‘쉬었음 청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대다수 이름표는 청년 당사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사회적 구조가 만든 상황을 개인의 태만이나 선택처럼 포장한다는 거부감 때문이다.
남에 의해 규정된 낙인임에도, 청년들이 자조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별명이 있다. 바로 ‘N포세대’다. N포세대는 2011년 연애·결혼·출산 3가지를 포기한 3포세대에서 시작해 내 집 마련, 인간관계가 더해진 5포 세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까지 늘어났다.
포기의 목록을 늘리는 가장 큰 요소는 ‘주거 비용’이다. 숨만 쉬어도 ‘방 한 칸의 무게’는 주머니에서 빠져나간다. 특히 이 무게가 소득의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청년들은 삶의 행복을 하나씩 포기한다.
늘어나는 주거 비용, 가중되는 삶의 무게
서울 관악구의 한 반지하에 거주 중인 이모씨(30)는 벌레가 나오고, 바닥에는 곰팡이가 피어도 이사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씨는 “여기가 주변에 비해 시세가 싼 편이라 그냥 살고 있다”며 “한 달 수입이 200만원 초반인데 70만원을 월세로 내다보니 따로 취미생활을 즐기기 어렵고, 누굴 만나지도 않고 그냥 숨만 쉬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24년 12월 국토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청년 1인가구의 근로소득 대비 주거비 비중은 평균 16.5%로 나타났다. 월평균 주거비는 48만6000원으로 산출했다. 하지만 이는 자가와 전·월세를 모두 포함한 전국의 평균치일 뿐, 이씨를 비롯한 서울 거주 월세 청년들의 현실을 대변하지 못한다.
이에 본지는 서울에 월세로 거주하는 청년 1인가구로 표본을 좁혀 이들의 한 달 가계부를 추정했다.
현실의 숫자는 잔인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지난 5월 발표한 ‘4월 다방여지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연립·다세대 원룸(전용면적 33㎡ 이하)의 평균 월세는 70만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5년 5월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거비를 제외한 청년의 생활비는 월 200만원(식료품비 80만원, 교통비 22만원, 오락·문화비 18만원, 통신비 14만원)이다. 이를 더하면 서울 청년이 한 달을 버티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돈은 총 270만원에 달한다.
반면 보건사회연구원이 집계한 서울 거주 청년의 평균 월 소득은 약 226만원(연 총소득 2722만원)에 불과하다. 기본 소득이 필수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다. 서울에서 기본적 생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청년들은 매달 약 44만원, 연간 528만원의 ‘생존 부채’를 떠안아야 한다. 소득 대비 주거비 비중은 이미 통상적 주거빈곤선인 30%에 육박한다.
약자에게 닿지 않는 ‘20만원’
이러한 ‘생존 부채’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시는 ‘돈을 주는 정책(현금 지원)’과 ‘집을 주는 정책(주거 공급)’을 양 대 축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 현금성 대책은 ‘청년월세지원’ 사업이다. 서울 거주 청년들은 생애 1회, 월 최대 20만원까지 1년간 월세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사업은 정작 가장 열악한 곳에 사는 청년들을 소외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입법조사처 발표에 따르면, 최저주거수준 미달과 중위소득 50% 이하를 동시에 겪는 20대 ‘복합위기 가구’의 79.5%가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주거 지원이 가장 시급한 취약 청년들이다.
하지만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월세 지원 혜택을 받은 청년 1만5000명 가운데 고시원 거주자는 단 203명(1.4%)에 불과했다. 방값이 저렴한 고시원을 찾은 주거 약자 청년들이 정작 임대인의 전입신고 거부 등 편법·불법 계약 구조에 가로막혀 정책 지원의 최소 요건인 ‘거주자 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취약한 약자가 제도권 혜택에서 멀어진 셈이다.
설령 지원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현행 사업 구조는 일시적 미봉책에 그친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관악구에 사는 박모씨(25)는 “돈 주는 건 좋은데, 받고 나면 끝이다”며 “잠시 부담을 덜어주는 것 뿐이다”라고 털어놨다.
청년 세입자 당사자 연대 민달팽이유니온이 ‘생애 단 1회, 1년 한도의 정책 조건’을 청년월세지원이 가진 한계로 꼽는 이유다.
김기성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역시 지원 기간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청년들이 서울에 단 1년만 살다 떠나는 것도 아니고, 최근 원룸 월세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시대에 1년의 지원기간은 너무 짧다”라며 지원 자격과 기간 확대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행정이 청년들을 세분화하지 않고 하나의 ‘동질 집단’으로 묶어 취급하는 점도 사각지대를 키우는 원인이다.
한국주거학회 분석에 따르면, 청년 세대의 주거 수요는 연령대별 생애주기에 따라 완전히 갈린다. 19~24세의 경우, 학업·군복무·취업 준비 등으로 월세 거주 비중이 높아 ‘월세 보조금 지원’을 가장 필요로 했고, 25~29세는 첫 직장 경험과 함께 전세로의 전환을 고려하는 연령대라 ‘전세자금 대출 지원’을 선호한다.
또 30~34세의 경우 취·창업 안정화와 함께 결혼·출산 등 가족 형성을 준비하며 기존 전세에서 자가가 추가돼 ‘전세자금 대출·주택 구입 자금 대출’ 등으로 수요가 집중된다. 연령대별 특징과 주거 이동 사유를 반영하지 못한 획일적 현금 지원은 예산 투입 대비 정책 효용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공공’간판 믿었더니…안심 없는 안심주택
집을 직접 공급하는 정책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서울시가 역세권 노른자위 땅에 주변 시세의 75~85%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청년안심주택’ 사업이 대표적이다. 취지는 좋지만 반복되는 보증금 미반환 사태에 ‘공공 주도 사기사업’이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지난 2023년 준공된 송파구 잠실센트럴파크 청년안심주택이 단적인 예다. 민간임대사업자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세입자를 모집하고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해 임대인이 공사비 급등 등을 이유로 불어난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고, 입주 청년 134가구는 238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사당동 청년안심주택 ‘코브’ 역시 지난해 보증보험 가입도 안 된 채 건물이 가압류됐고, 올해 영등포구 도림동 ‘도림브라보’에서도 세입자가 보증금 5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청년안심주택이 정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이 맞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성영 동천주거공익법센터 연구원은 지난해 9월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서울시의 ‘권한 대비 과도한 홍보’가 피해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서울시의 관여 권한이 크지 않지만, 시의 대표적 주택사업으로 홍보하다 보니 많은 청년들이 서울시에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수준으로 이해하고 입주한다”며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경각심이 있던 청년들도 서울시가 공급하는 주거 유형으로 이해하고 들어온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시의 권한, 관리감독 체계가 청년들의 인식만큼 더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기성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민간과 함께하는 사업이더라도 서울시의 주요 사업으로 홍보했으면 체계적 관리감독이 필요했다”며 “시에서 관리 책임 문제를 마주보고 (보증금 미반환)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임대사업자 양성 내지는 공공성을 확보한 임대주택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부담 가능한 임대료인지, 사업자 관리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의 중심에 서울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도화되는 서울…‘저렴한 주거 생태계’ 품어야
전문가들은 향후 서울시의 주거 정책이 외형적 공급이나 평균 위주의 설계에서 벗어나 청년세대 내 저소득층의 현실을 더욱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성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미리내집’이라는 이름의 장기전세주택 정책을 강조했지만, 청년세대나 신혼부부들이 들어가기엔 임대료가 높다”라고 지적했다.
공공임대주택의 혜택이 자금력을 갖춘 중산층뿐 아니라 청년 약자층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공급 트랙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 책임연구원은 또 “서울시의 정비사업 추진 과정 가운데 거주하던 청년들의 주거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시 차원에서 같이 가져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비사업의 특성상 노후 빌라촌이나 반지하, 낡은 다세대 원룸 등 청년 세입자들이 감당할 수 있었던 ‘저렴한 주거지 생태계’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공급 가속화 과정에서 청년들이 도심 밖으로 밀려 나가지 않도록 완충지대를 마련해 주는 행정적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조어로 시작한 경고, 국가적 위협이 되다
세입자의 정주 여건에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른 세대에 비해 자산 형성기가 짧은 청년의 주거 문제가 유독 크게 대두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안정적 삶의 공간을 보장받지 못한 청년들이 삶에서 희망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 역시 당연한 귀결이다.
주류 사회가 청년들을 ‘쉬었음’ ‘MZ’ 등의 이름표로 가두려 할 때 이를 거부한 청년들이 유독 ‘삼포세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 단어만이 유일하게 그들이 처한 숨 막히는 현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삼포세대’에서 15년이 흐른 지금, 청년들은 더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청년들의 삶의 비용에서 주거가 가장 무겁고 절대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사회와 정책이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정직하게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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