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경제채널 = 남기정 칼럼니스트] 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서면 도시는 거대한 실외기처럼 열기를 뿜어낸다. 실내를 차갑게 식히기 위해 소비하는 막대한 에너지는 담장 밖 도시 공간을 더욱 뜨거운 열섬으로 몰아넣고, 우리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열기 속에서 다시 기계식 냉방에 의존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기술의 발전과 편리함이 인간에게 유토피아를 안겨줄 것이라 믿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인공의 쾌적함 뒤에 감춰진 더 큰 자연의 반격을 견뎌내는 중이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만 돌려보면, 이 땅의 공간과 삶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름을 건너왔다. 선조들에게 여름은 ‘복종해야 할 무더위’가 아니라 ‘순응하며 즐겨야 할 자연의 마디’였다. 그 중심에는 24절기라는 정교한 자연의 시계가 있었고, 그 시계바늘의 움직임에 맞춰 정동(靜動)하는 전통 건축과 도시 공간이 있었다.
전통 공간에서 더위를 이겨내는 방식은 대단히 패시브(Passive)하면서도 기학적이었다. 마당에 드리운 아침 햇살이 마사토를 데우면 양압이 발생하고, 그늘진 뒷마당의 서늘한 공기가 음압을 형성하며 대청마루라는 긴 바람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대류를 일으켰다. 대청 전면의 분합문(들문)을 들어 올려 걸쇠에 거는 순간, 아늑했던 주거의 내부는 순식간에 외부의 바람과 풍경을 완전하게 품어내는 그늘진 평상으로 변모했다.
어디 그뿐인가. 소서(小暑)와 대서(大暑)의 극서기(極暑)가 도달하면, 인간은 지상에서 바닥을 높게 띄운 누각과 정자로, 혹은 물길이 끊이지 않는 계곡과 원림(園림)으로 피서의 공간축을 옮겼다. 지열을 차단하고 바람을 품는 고상(高床) 구조의 누정에서 수변의 증발냉각 효과를 누리고, 차가운 계류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즐겼다. 그것은 기술로 환경을 통제하려는 오만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최소한의 인공적 장치를 통해 자연의 미기후(Microclimate)를 극대화하는 성숙한 공간적 대응이었다.
이러한 선조들의 피서법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들의 삶에는 자연의 이치를 인정하고, 계절의 흐름 속에서 다가오는 불편함을 일정 부분 인내하는 ‘절제와 순응의 미학’이 존재했다. 바람 한 줄기를 얻기 위해 집의 향(向)을 고민하고 마당을 비워두었던 마음, 계절의 절정에 도달했을 때 스스로 몸을 낮춰 자연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던 지혜는 모든 것을 버튼 하나로 제어하려는 현대 도시 건축이 잃어버린 본질이다.
편리함과 기계화가 과연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가. 차가운 에어컨 바람 아래서 창밖의 열섬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휴식은 어딘가 서글프다.
이제 우리는 자연을 다스림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 건물의 벽을 닫아걸고 에너지를 쏟아붓는 피서에서 벗어나 도시의 바람길을 열고 자연의 녹지와 수경 인프라를 복원하는 일, 그리고 자연의 계절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 절기라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최소한의 장치로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의 공간사적 지혜야말로 열기 속에 신음하는 현대 도시와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삶의 대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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